유도선수 허미미 프로필 총정리|독립운동가 허석 선생 5대손 국적 나이 아시안게임 금메달


유도선수 허미미 프로필 총정리|독립운동가 허석 선생 5대손 국적 나이 아시안게임 금메달

허미미 프로필, 어떤 선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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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여자 유도 57kg급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허미미는 2002년 12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출신 유도 선수로, 현재 대한민국 여자 57kg급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했고, 6세 무렵 유도를 시작했습니다. 일본 중학생 시절 전국대회 정상에 오를 정도로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냈으며 이후 와세다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 진학했습니다.

구분내용
이름허미미(HUH Mimi)
출생2002년 12월 19일
나이만 23세, 2026년 10월 기준
출생일본 도쿄
종목유도
체급여자 -57kg
소속경북체육회
학력와세다대학교 스포츠과학부 졸업
가족 배경한국인 아버지·일본인 어머니
독립운동가 후손허석 선생 5대손
주요 성적2024 세계선수권 우승, 2024 파리올림픽 개인전 은메달, 혼성단체 동메달,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금메달

와세다대 공식 자료에도 허미미가 스포츠과학부 학생으로 2024 세계유도선수권 여자 57kg급 우승과 파리올림픽 은메달을 기록한 사실이 확인됩니다. 이후 2025년 3월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대표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허미미가 한국 국가대표를 선택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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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언이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허미미가 태극마크를 선택한 데에는 “한국 국가대표로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의 유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에서 유도 유망주로 성장하던 허미미는 2021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경북체육회에 입단했고, 2022년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출전했습니다.

허미미는 한일 이중국적 상태에서 이후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선수로 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자신을 “지금은 태극마크를 달고 유도하는 한국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허미미는 정말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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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체육회 입단 과정에서 처음 정확한 가족사를 알게 됐습니다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이 맞으며, 허석 선생은 허미미의 현조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허미미 자신도 처음부터 이 사실을 자세히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와 경북체육회에 입단하는 과정에서 김정훈 감독 등이 가족관계를 확인하면서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후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배경과 한국 국가대표를 선택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더욱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허석 의사’로도 검색되지만 공식 기록은 허석 선생으로 확인됩니다

언론이나 검색에서는 ‘허석 의사’, ‘허석 지사’라는 표현도 사용됩니다. 다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은 허석(許碩) 선생을 1857년생 국내항일 독립운동가로 공식 수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블로그나 정보글에서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 또는 ‘허석 지사’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1918년 일제의 국권 침탈을 규탄하는 격문을 직접 작성했습니다

허석 선생은 1918년 일제의 식민통치와 국권 침탈을 규탄하는 격문을 써 붙이며 항일운동을 벌인 인물입니다.

독립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허석 선생은 1857년 4월 2일 경북 군위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허수경입니다. 농업에 종사하다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일본의 식민정책과 한국인의 권리 침탈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1918년 8월경 군위군 의흥면으로 이어지는 도로 근처 비석에 직접 항일 격문을 붙였습니다. 격문에는 일제의 통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과 나라를 잃은 백성의 고통이 담겨 있었습니다.

징역 1년을 살고 출옥한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허석 선생은 격문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았습니다.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형기를 마치고 출옥했지만 불과 3일 뒤인 1920년 4월 24일 옥고의 후유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려 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파리올림픽 메달을 들고 허석 선생을 찾아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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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가장 먼저 현조부의 기적비를 찾았습니다

2024 파리올림픽을 마친 허미미는 귀국한 다음 날 대구 군위에 있는 허석 선생의 기적비를 찾아 은메달과 동메달을 바쳤습니다.

허미미는 파리올림픽 여자 57kg급에서 은메달을 따고, 혼성 단체전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귀국 후인 2024년 8월 6일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에 있는 허석 선생 기적비를 찾아 두 메달을 직접 올려놓았습니다.

당시 허미미는 가장 먼저 이곳에 와 메달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국 대표로 경기에 나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유도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허석 의사의 몇 대손인가요?

A. 허미미는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입니다. 허석 선생은 허미미의 현조부이며, 1918년 일제의 국권 침탈을 규탄하는 격문을 작성했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Q. 허미미는 왜 일본이 아니라 한국 국가대표를 선택했나요?

A. 2021년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한국 국가대표로 뛰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남긴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허미미는 이후 경북체육회에 입단해 태극마크를 달았고 일본 국적도 포기했습니다.

Q. 허미미의 최근 주요 성적은 무엇인가요?

A. 2024 세계유도선수권 여자 57kg급 우승, 2024 파리올림픽 개인전 은메달과 혼성 단체전 동메달을 기록했습니다. 2026년 10월 1일에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여자 57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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